오랜만에 연락받기(2)
"형 저 OOO이에요. 기억나시죠? 반가워요!!"
잠시 여러생각이 들었다. 여러명이 생각났다. 동일 이름을 가진 몇몇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서 누굴까? 범위를 좁혀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이미지가 머리속에 그려졌다.
동시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왜 전화했을까? 무슨 잘못했나? 기억을 더듬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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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저 OOO이에요~~ 고등학교... 기억안나?!
기억을 다 더듬기도 전에 그는 자신을 설명했다. 덕분에 머리속은 개운해졌다.
그는 고등학교 후배이자 교회 동생 OOO이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마주칠 일은 많지 않았지만, 교회에서 같은 써클 활동을 했다. 연극반이었다. 서로 다른 스타일로 친해질일 없는 우리가 어설픈 연기를 통해 친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서로 다른 길로 갈라졌다. 나는 지방에 기숙사 학교로 갔다. 간간히 서울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인간관계가 많이 끊겼음이 확실하다. 그 이후론 간간히 소식만 들을 뿐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기억이 없다.)
그 동생이 근 20년이 지난 싸늘한 가을 저녁에 뜬금없이(?) 전화한 것이다.
매우 반가웠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했다는 것도 감사하다. 더욱이 전화까지 한 것이다. 그게 누구든지, 내가 좋아했든 아니든 기분이 결코 나쁠 수가 없었다.
동시에 불안감도 엄습했다. 분명 아니라고 생각이 들지만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가령 내가 잘못한 거 있나? 돈을 안 갚았나? 나한테 부탁할게 있나? 등이다.
그래도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반갑게 소리질렀다.
"정말 오랜만이다. 잘지냈어?!!!!!!' 로 말이다.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여지껏 이야기까지......
초기에 내가 가졌던 불안감도 사라졌다. 동생은 초반부터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결혼때문에 전화한거 아냐~~ㅋㅋ 나 잘살고 있어~~"
"그냥 생각나서 전화한거야~"
안심할 수 있었다.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직접 말해주는 게 고마웠다.
갑작스런 전화치고 수분이 흘렀다. 대화 주제는 시간을 교차했다. 고등학교 시기에서 갑자기 최근의 일로. 다시 오늘로 움직였다. 그리고 반복했다. 끝도 없이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끊지 않으면 퇴근도 못할 수준이었다.
다행히 정말 좋은 인간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키가 작은) 동생에게 먹을 거 사주고, 격려해주고, 보호해주고 온갖 긍정적인 단어들을 들었다.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20년이나 지났으니, 기억이 나는게 신기한 거다. 너무 낯설기 까지 했다.
내가 진짜 그랬나? 다른 사람하고 착각하는 거 아냐? 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흥분해서 얘기하는 동생을 겨우 진정시켰다. 가까운 시일내 얼굴 마주보자는 말로 힘들게 전화를 끊었다.
두서없이 생각하게 된다.
20년의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강산이 두번 변했다. 많은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간이다.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런 회고를 할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낀다.
동시에 20년 후도 분명 있을것이다. 불의의 사고나 병이 아니라면 그때도 지금 이시기를 기억할 것이다. 지금처럼 아주 희미하게 말이다.
지금은 좋은 기억이 될까? 끔찍한 시기가 될까? 헤헤 거릴 수 있을까?
우선 어린 나에 대해서 좀 더 탐구해 봐야겠다. 제 3자의 기억을 빌려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