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풀린 일상

건물주의 나름 합리적인 삶

별이 빛나는 밤에 2023. 9. 26. 00:23

 

왜 그렇게 살아?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필자가 어릴적 누군가에게 가끔씩 들은 소리다. 10여년 전 우연히 만난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할 일이 많았는데, 대화가 깊어질수록 이런 힘빠지는 조언 아닌 조언을 자주 들었다. 그 때의 주제는 어떤 것을 계획했고,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고, 헤쳐가는 과정이었고, 당연히 푸념도 피어나곤 했다. 그 때마다 그는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하는 말로 조언을 마무리했다.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쉽게 말하지? 결과를 만들어냈을 때의 성취감을 모르나? 과정 중에 힘들어도 결과나 나오면 기쁘지 않나? 그런 감정을 모르나? 그만두라는 조언보단 격려가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주 스쳐갔다. 덕분에 이야기는 항상 길어졌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힘들면 안하는게 맞다. 순간순간이 행복해야 된다. 그렇게 힘들다 하면서 할 필요가 없다." 그는 대화하면 할수록 나와 많이 달랐다.(아니 그 당시의 나다.) 굳이 힘든 것을 겪지 않으려고 했고, 힘든 것을 통해 어떤 것을 성취하는 즐거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나와 많은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고, 어느새 대화가 끊어졌다.  

 

'서로 다르다' 라는 점을 인식하는데 시간이 흘렀다.

 

"인간이 이리 다양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흘렀다. 단순히 몇일이 아니라 수년의 시간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내 자신도 반성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내 생각이 상당히 어렸다. 물리적인 나이를 말하는게 아니다. 나이는 있었지만 사람 경험이 부족했다는 의미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세상에 '분명히 존재함'을 알아야 되는데, 그걸 몰랐다. 참 치명적이다.

 

기사에 나온 부부도 비슷한 케이스가 아닐까?

 

결혼 전 남편은 아내의 맘에 들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한명의 여자를 아내로 만들기 위해, 그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을 것이다. 결국 아내의 맘에 들었고, 결혼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 후는 달라졌다. 항상 항상 맘에 들 수 없다. 이게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서로 '치명적으로 다른' 부분이 도드라졌다는 점이다. 남편은 밤낮 없이 게임만 한다. 아내가 꿈꿨던 남편의 모습이 아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매우 실망한다. 동시에 속았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게 실망할 거리가 될까? 속았다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월 800만원, ‘갓물주’ 남편, 게임만 해 한심…평범한 삶 꿈꿉니다” (naver.com)

 

“월 800만원, ‘갓물주’ 남편, 게임만 해 한심…평범한 삶 꿈꿉니다”

건물주 남편에게 매달 월세 800만 원이 들어온다는 사연을 전한 30대 아내가 “평범한 삶을 꿈꾼다”고 말해 그 배경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25일 방송된 JTBC ‘사건반장’에서는 결혼 2년차 여성

n.news.naver.com

 

아내는 정말 몰랐을까?

 

보통은 결혼 전에 상대방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려 애쓴다. 심지어 속이려고 한다. 반면에 나는 상대방을 검증한다. 자신과 맞는지 안 맞는지 만나는 기간 내내 확인한다. 어느정도 확인되면 결혼이라는 결실에 이른다. 하지만 그렇게 검증해도 결혼 후에는 새로운(?) 모습에 실망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결혼을 잘하고 싶은 자는 자신이 참을 수 없는 부분을 먼저 파악하고, 적어도 참을 수 없는 부분을 가진 사람을 배우자로 받아들이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사의 아내도 결혼하기 전에 남편을 충분히 간파했어야 되는 것 아닐까? 아니면 간파했지만 모른 척 한것인가?

 

사람은 어쩔 수 없다.

 

사람은 어쩌지 못하는 게 있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것들.... 그게 바로 주변 환경이다. 즉,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유전자, 가정환경, 교육, 친구 등 주변지인 등 '피할 수 없는' 요소들에 영향이 절대적이다. 거창하게 사상과 생각, 의지, 조잡하게는 오늘 저녁 메뉴를 선택하는 것도 이들을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건 좋은 환경, 나쁜 환경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다른' 환경을 말하는 것이다. A 라는 환경에서는 A', B라는 환경에서는 B'라는 모습이 나온다. A에서 C', C에서 A''가 나오는 건 매우 어렵다. 가령 모든 것이 부유한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생활한 사람은 '간절함'보다는 '여유'라는 감정을,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여유'보다는 '간절함'이란 감정을 갖기 쉽다. 즉, 풍족한 환경에서 아쉬움 없이 살아온 사람에게 간절함이라는 감정을 학습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부유함과 간절함, 두 단어는 별로 안친하다. 

 

이 기사에서 나오는 월세 800만원 받는 건물주 남편이 그 사례다. 분명 어릴 때부터 풍족한 환경에서 살아왔고, 강인한 성공의지가 없어도 의식주가 해결되는, 아니 그래도 돈이 남는 환경에서 생활했다. 여기서는 '간절함'이라는 단어를 인식하기 어렵다. 간절함 수준까지 아니더라도 '열심'이라는 단어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원래 대부분의 인간은 게으른 동물이다. 아무것도 안해도 풍족한 생활이 이어지는데 굳이 열심, 간절할 필요가 없다. 이런 그에 이런 성스런 행동을 원한다는 건 아내의  과도한 욕심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물론 이런 환경에서도 더 나은 삶을 영위하려는 사람이 있다. 흔히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대표되는 '희생'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고 자신의 자원을 적절히 활용하고 세상에 기여하려고 하는 사람은 물론 있다. 하지만 '길에서 흔히 보는 사람'에게 그걸 원하는 건 안된다.

 

아내는 알아야 했다. 

 

아내는 분명 알아야 했다. 남편의 집안 환경이 '열심' '성심' '간절함'을 갖고 살기에는 너무나 '좋은' 환경이라는 점을 말이다. 여기서 더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은 무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마도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은연중에 말이다. 그렇지만 건물주라는 이점에 설득되어서 다른 부분들에 가중치를 적게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건물주의 나름 합리적인 삶

 

더욱이 남편은 나름대로 절대 패배하지 않은 삶의 방식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무리하게 일(사업)을 해서 실패할 경우 기존의 있던 풍요를 잃어버릴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원래 가난했던 사람보다 더 비참하게 살 수 있다. '더 이상 성공하진 않지만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제로'인 차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내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는 삶이다. 

 

남은 어떻게든 이야기 할 수 있다.

 

물론 사회적인 입장에서, 제 3자의 입장에서  " (젊은 때는) 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성취감을 느껴야 한다".라는 종류의 조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남얘기'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당사자 입장이면 그러기 쉬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