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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들건들

어디까지원작인가(미학스캔들_진중권)

by 별이 빛나는 밤에 2025. 4. 8.

원작이란 무엇일까. 원작의 범위는 어디까진가
 
원작(原作)의 사전적인 정의는 '본디의 저작이나 제작'이다. 쉬운 말로 하면 처음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단어는 원본, 원저, 원전 등의 단어와 이어진다. 반대되는 모작, 모사품 같이 처음이 아니라 나중에 만들어진, 그리고 비슷하게 만들어진 의미를 담고 있다. 단어의 의미는 반대말의 존재로 인해 진해진다고 했던가.  원작이라는 단어도 모사품, 모작이라는 말에 대비되어 그 의미가 살아난다.


원작은 모사품에 대비해 여러 특성을 갖는다. 우선 비슷한 것들 중에서 첫 작품이다. 나머지 것들은 첫번째 작품을 참조해서 아니면 똑같이 복사해서 만든 작품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진짜라는 의미를 갖는다. 모사품에 대비해서 가치 있는 주체가 가치있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가치있는 물건이다. 반면에 모사품은 덜 가치있는 주체가 덜 가치있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것들은 가짜라고 표현한다. 
 
두 단어는 예술작품을 구분하는데 많이 쓰인다. 흔히 원작은 특정 예술가가 자신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만든 작품이며, 모사품은 그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만든 작품이다. 전자는 예술품으로 높은 가치를 갖고, 후자는 복제품으로 전자보다는 낮은 가치를 갖는다. 이 명제는 일반인이 알고 있는 원작과 원작이 아닌 작품에 대한 인식이다.
 
이런 고정관념에 일종의 칼을 사용해서 도려내는 기회를 주는게 '미학스캔들'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동양대학교에서 미학을 가르치는 진중권 교수가 쓴 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2016년 이슈가 되었던  '조영남 대작() 사건' 관련하여 '원작의 범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조영남 대작 사건이란  동년 3월 그가 발표한 작품 중 200점 이상이 다른 무명화가가 대부분 그리고 본인은 사인 정도만 넣은 대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한다. 원래 가수인 그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시작하여 나중에 전시회를 열정도로 그림을 그렸고 파는 행위를 하였지만, 대부분을 자신의 조수에게 맡기는 '대작'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의 대작 가능 여부에 대한 사회적인 논쟁거리가 이슈가 되었다.

 

 

구상작업만으로 예술활동이 가능한가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예술가가 수작업 없이 구상작업만으로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가이다. 예술작품 탄생 과정은 구상작업과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즉 어떤 작품을 만들것인지 생각하고(구상),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작업(수작업)을 의미한다. 문제는 실제 작업을 하지 않고 생각만 하더라도 그가 만든 작품이라고,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실제로 조영남은 그림작품을 완성시키는데 수작업에 참여하지 않고, 참여하더라도 최소한의 작업만 했다. 즉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되는지 지시만 하고 실제 작업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행태가 일부 구매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고, 결국 사기죄 논란에 빠져 기소되어 재판받는 과정까지 갔다.

 

발상과 실행
 
이 책의 저자인 진중권은 이 발상과 실행의 관계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한다. 보통 사람들은 예술가라고 하면 구상과 실행을 모두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즉, 예술가는 극단적으로 구상만 하더라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사실을 과거의 무수한 사례를 통해서 증명한다.

 

 

미켈란젤로가 혼자서 시스키야 대성당의 대벽화를 그렸을까?

오늘 날 '예술'이라 하면 흔히 한 개인의 고독한 '창작'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시절 예술의 생산은 성격상 여러 기술자들 사이의 협업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작업자 집단의 꼭대기에 장인이 있었고 그 아래로 조수나 제자가 고용되어 있었다......대개 장인은 전체적 디자인을 책임졌다. 조토, 도나텔로, 라파엘로 그 밖의 여러 작가들의 디자인과 도상학적 해석의 일관성은 작품의 기원고 최초 단계의 전개가 매우 빈번히 장인의 정신과 손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시절 작품의 실행에서 조수의 역할은 0퍼센트에서 100퍼센트까지 다양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천재 예술가들도 모든 작품을 혼자한게 아니다. 수십명의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조수의 실작업을 일부 또는 전적으로 받았다. 결국 혼자 한게 아니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자화상이 아니다. 

 

17세기의 원작의 개념은 친작의 개념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시절에는 제자의 자유모작도 스승의 원작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만약 '자화상'이라는 말이 오늘날처럼 화가가 자기손으로 직접 그린 것을 의미한다면, 이른바 '렘브란트 자화상'의 상당수는 자화상이 아닐 게다.....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간단하다. 그 시대의 원작의 기준이 오늘날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부분적으로 제자의 도움을 받은 것, 제자가 그린 것에 리터치만 한 것, 제자가 그린 것에 장인이 사인만 한것도 원작으로 간주했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렘브란트 자화상의 대부분은 자화상이 아니라 초상화(?)가 된다. 그럼에도 렘브란트 자화상이라고 하는 건 명장이 손수 그린 친작이기 보다는 명장의 스튜디오(?)에서 나온 '정품'임을 보증하는 용도로 쓰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예술가의 모습은 어디서 온것일까?

작가는  인상파 화가인 고흐에서 찾는다.인상파 회화  특성상 화가가 구상부터 스케치 색칠까지 모두 할 수 밖에 없었다. 예술사적으로 보면 특이한 예외적인 사례인데도 대중은 전형적인 예술가의 모습으로 보고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여전히 신화화한 고흐의 이미지를 화가의 전형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고흐는 화가의 전형이라기보다 차라리 예외에 가까웠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조수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인상주의 기획의 본성에서 비롯된 일이다. 인상주의의 바탕에는 색이란 사물에 고유한 성질이 아니라 반사된 빛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빛은 시간.장소.일기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인상주의자들은 그렇게 변화무쌍한 빛의 순간적 인상을 포착하려 했다....반면 형태와 색채가 망막위에서  발생하는 주관적인 일상이라면, 그것은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밀한 인상을 타인이 대신 그린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그 일을 시키려고 현장마다 조수를 데리고 다닌다면, 우스운 일일 것이다.

 

 

대작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작가는 원작의 범위에 대한 논쟁은 이미 끝났다고 이야기한다. 원작은 작가 혼자 그린게 아니라 조수같은 조력자의 도움을 받는 것, 심지어는 조력자가 전체 작업을 수행한 작품이라도 원작이 될 수 있다. 심지어는 21세기에 이런 논쟁이 발생했다는 모습에 황당하다는 모습을 취한다. 

 

이제 대작의 관행이 갖는 미술사적 의미를 얘기해 보자........이미 확립된 관행에 도덕성 시비를 거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반드시 작가의 물리적 개입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작은 결코 부정적으로 볼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미술을 이전 시대의 미술과 구별해주는 중요한 특징, 즉 창작에서 '관념과 실행의 분리'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관념과 실행의 분리덕에 1960년대 이후 미술의 영역은 그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록 확장됐고, 미술적 프로젝트의 스케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록 확대됐다......분리가 없었다면, 워홀을 비롯하여 현대미술을 이끄는 슈퍼스타들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영남 작가에게 보내는 권고

 

작가는 앞서 언급한 예술품 원작의 의미 명확화를 통해 조영남을 옹호함과 동시에 따끔한 내용도 권고 한다.

 

첫째. 대작의 사용을 공공연히 드러낼 것

둘째. 자기 작업에서 대작이 갖는 미학적 필연성을 남은 물론이고 우선 자기에게 해명할 것

셋째. 예술적 훈련을 받고 기예를 갖춘 조수들이라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줄 것 

 

예술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조영남이란 미술가가 몇가지 실책을 했음은 분명하다. 우선 자신이 서명한 작품이 대작이라는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지 않았다. 분명 대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사지 않았을 (무지한) 고객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민감한 고객들에게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대작이라는 사실을 고지해야 한다. (물론 법적으로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특정 예술작품을 완성하는데 대작이 불가피함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조영남은 조수에게 턱없이 낮은 대우를 한 건 사실이다. 

 

법적 처벌이 아닌, 도덕적인 비난이 맞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조영남의 사례는 법적인 사안이 아니고, 도덕적, 윤리적인 사안이라는 점이다. 원작에 대한 관점은 점점 유연해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대작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조영남이 누락한 미술에 대한 나태와 조수에 대한 홀대는 윤리적으로 비판받아야 한다. 그래서 '권고'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모습은 일개 개인의 모습이 아니라 현재 우리 예술분야의 고질적인 문제로, 사회전체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조영남, 대작 사건 언급…"김수미가 도움 줘, 5년 다툼 끝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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