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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풀린 일상

R&D예산 삭감, 과연 성공할까?

by 별이 빛나는 밤에 2023. 10. 20.

10.19.(목)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가 있었다. 이날 국정감사의 주인공(?)인 추경호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연구개발(R&D) 예산 '대규모 삭감 건'에 대해 여러 국회의원들의 질타를 받아야 했다.

 

2024년 연구개발(R&D) 예산 대폭 삭감

 

기재부는 내년 예산에서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수치로 보자면 25조9000억원으로, 올해 31조원 대비  16.6% 줄었다. 우리나라 국가 R&D 예산이 전년 대비 삭감된 것은 1991년 이후 33년 만의 일이라 한다. 삭감폭도 1991년 당시 10.5%보다 훨씬 크다. 내년 정부 총 지출에서 R&D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줄어 3.94%가 됐다. R&D 예산 비중이 3%대로 떨어진 것은 2005년 이후 19년 만으로, 올해 4.9% 대비 1%p 가량 감소했다.

 

당연스레 수많은 연구기관들의 비난과 볼멘소리에 직면했다. 여기서 '연구기관'이란 단순히 대학교, 연구소 같은 전통적인 연구기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부기관들의 연구용역 담당 부서까지 매우 광범위한 범위를 말한다. 즉, 대학교, 연구소의 순수(응용)과학에서 정책결정을 위한 연구용역 예산까지 씨가 마르는 수준이다. 이에 몇몇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몇몇은 생존에 대한 두려움에  소리지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의 의견은 국회의원을 통해 국정감사에서 아주 뜨거운 주제로 대두되었다.  

 

"세계가 놀라는 R&D 예산 삭감"…쏟아지는 비판에 추경호 "성역은 아냐" (daum.net)

 

"세계가 놀라는 R&D 예산 삭감"…쏟아지는 비판에 추경호 "성역은 아냐"

19일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야당에서는 IMF 때도 줄이지 않았던 R&D 예산을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에 삭감했다며

v.daum.net

 

삭감이 아니라 재조정 

 

기재부 장관은 국감장에서 예산을 삭감한 이유를 "기존의 연구기관의 카르텔을 제거하고 더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는 도전적이고 영양가 있는 분야"에 예산을 집중하기 위한 예산 '재조정'이라고 주장했다. 즉, 기존 돈을 '날로 먹는' 식충이들을 정리하고, 정말 필요한 사업에만 예산을 집중 투입하여 효율적, 효과적인 국가 기술발전을 이루어내겠다는 주장이다. 

 

취지는 존중한다. 그러나.....

 

취지는 매우 존중한다. 예산낭비를 최대한 피하고, 정말 필요한 연구개발에 자금이 집중 투입되어야 한다. 즉, 돈이 헛되게 쓰이지 않고, 최선의 결과가 나오도록 국가 자원을 최적화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두가지 전제조건

 

하지만 여기에 필요한 두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하나는 최적의 연구개발과 그렇지 아니한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구별에 기준이 되는 국가정책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1.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능력

 

첫번째를 설명하자면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기재부에 어떤 연구개발 예산이 요구되었을 때 이 연구개발이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꼭 지금 수행해야 되는지 아닌지, 다른 연구와 중복된 것인지 아닌지, 국가의 정책기조와 일치하는지 아닌지" 등에 대한  '정교한 분별'이 필요하다. 여러 요소들을 토대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더라도 국가정책 기조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이걸 어떻게 조율하고 종합적으로 평가할 것인가?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이를 평가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2. 국가정책 기조의 일관성

 

둘째는 국가정책 기조가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정부가 추구하는 국가의 미래 발전 모습에 부합하는 기술이 아니라면 예산을 줄 수 있을까?  줄 수 없다. 단순히 첨단기술이라고 퍼줄 수 없다. 효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국가의 정책에 부합해야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평가기준이 되는 국가정책 기조가 수시로 바뀐다면 어떨까? 특히 정권에 따라, 외부 환경에 따라 유행 돌듯이 바뀐다면, 그 기술의 필요성도 달라질 것이다. 즉, 시기에 따라서 기술발전 기준이 바뀐다면 극단적인 비효율이 초래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당장 필요해 보이지 않는' 비주류 기술이라도 명맥은 이어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언제 필요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도 정확한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기재부 공무원들이 '정교한 분별'을 수행할 수 있을까?

 

앞서 연구개발의 경중을 구분하기 위해서 정교한 분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고도의(아니 고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관련분야에 대한 식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수행의 주체인 기획재정부가 그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을까? 

 

기재부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정부부처다. 공무원 중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가진 그들이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정부부처가 바로 기재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말하는 능력은 여기서 말하는 시험성적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옥석을 가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식견을 갖고 잇어야 하고, 그 분야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문과 출신 기재부 공무원이 수십개의 연구개발 예산 현안을 검토한다?  

 

기재부 공무원의 직렬은 주로 행정, 기획, 예산, 회계, 통계 직렬 등이다. 당연히 부처 성격에 맞게 '행정과 수치'에 맞는 분야에 포진한다. 반면에 과학이나 기술과 관련된 직렬은 없거나 적다. 그만큼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는 높지 않다고 감히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공계 전공을 했지만 기재부 관련 직렬을 선택한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예외인 경우이고 대부분은 행정, 재정 분야를 전공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한두개의 연구개발 건을 검토하는게 아니다. 기재부 공무원은 격무로 유명하다. 수십 건의 사업(연구개발) 예산 필요성에 대해서 검토한다. 이것은 어느 하나에 깊게 파고들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물론 그들의 명석한 두뇌와 시간 투자로 내실있게 검토할 수 있겠지만 모든 내용을 보는 건 확률적으로 어렵다. 

 

그래도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 

 

이런 열악한 상황임에도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한다. 결과는 정책의 효과를 의미한다. 기재부장관의 말대로 기존의 카르텔을 제거하고 정말 필요한 곳에 예산이 쓰이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나라 기술발전 속도를 훼손시키지 않는지 장기간에 걸쳐서 지켜봐야 한다. 분명 나중에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취지 자체는 나무랄게 없기 때문에, 그들의 옥석가리기 능력을 우선 믿는 수밖에 없다.